이번 가을 훗카이도 여행은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매년 긴 연휴기간이 가까와질 즈음 세계지도를 머리 속에 펼쳐놓고,
어디를 갈 지 상상을 하다가
시간 맞고, 여건이 맞으면 여행지를 낙점 찍고,
그때부터 정보를 긁어모아
숙소며, 여행동선이며 꼼꼼이 짜던 평소와 달리...
요번처럼 후다닥 비행기표만 예매하고
서점에서 구입한 여행책자 한 권에 의지해서
출발한 것은 가족을 이끌고 간다는 측면에서 무모한 도발이였다.
서울에서 2시간 반 비행기로 도착한 곳은 신 치토세 공항
공항에서 40분 열차를 타고 삿포로 역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 40분이다.
숙소는 이비스스타일 삿포로
중저가 비지니스 호텔이지만, 어느 정도 갖추어진 호텔이다.
호텔 로비에서 와이프는 체크인 중,
그동안 나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낯선 공간에 적응 중이다.
다음날
창문 밖을 보니, 날씨가 좋다.
만선을 꿈을 품고 출항하는 어부 마냥
카메라를 매만지면서 기분이 한껏 부풀어오른다.
삿포로 역 근처 토요타 렌터카에서
무려 10장이나 되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제일 작은 P1 급 자동차를 빌렸다.
25년간 왼쪽에서 운전을 하다가, 단지 오른쪽으로
한 칸 자리를 옮겼을 뿐인데, 결과는 생각보다 충격적이다.
도로연수 받는 것 마냥,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
시외로 나오니 다행이 차들도 없고, 길은 쭉쭉 뻗어 있다.
가고자 하는 곳이 비에이라는 곳이다.
일어로는 미영(美瑛, びえい)이다.
추수가 가까워지면서 들판이 누렇게 영글어가고 있다.
곡식이 마르기 알맞게 햇살은 강렬하고, 바람은 건조하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후라노에 있는 팜 토미타(토미타 농장)다.
라벤더를 비롯해, 사루비아, 세이지, 국화, 해바라기 등등
계절 별로 눈에 고운 화초들을 대규모로 길러내는 곳이다.
화초 재배보다는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운영되는 화원으로 생각된다.
라벤터 아이스크림 ... 색깔은 라벤다지만,
맛은 그저 평범한 소프트아이스크림이다.
넓은 구릉지대에 솟아난 몇 그루의 나무들은 여름철 유난히 짙어보인다.
그 아래 드리워진 그늘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부릴 수도 있다.
저 멀리 도카지 활화산 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구릉지대의 끝은 아직도 살아 있는 화산지대라니,
일본은 작지만 자연 환경만은 다채로운 나라다.
오늘은 하늘이 받혀준다. 모든 사진에 하늘색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농장에서 내려오는 길에 대규모 중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한국이나 일본 어디가나 중국인들이다.
아직 자라지 않은 좁은 화초 사이로 황갈색 농토가 드러난다.
북해도는 사실 밭농사에도 적합한 토양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수 백년에 걸친 노력으로 품종 개량과 개간을 통해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또 다른 농장 ... 유럽의 어느 시골 같지만 여기는 일본이다.
구릉지대를 달려 비에이 역으로 ...
비에이역 근처 마을은 흡사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같은 모습이다.
창문이 큰 양옥집에, 각각 번호가 달려 있다.
1916, 1985 등등 모두 그 집이 생긴 해를 기록한다.
영국의 바스(Bath)에서 보았던 그런 방식으로 마을의 역사를
집집마다 기록해 놓았다.
점심으로 먹은 소박한 에비동과 우동
점심식사 후
길을 따라 비에이 주변을 둘러본다.
후쿠세이노오카 전망대에서... 피라미드 모양의 독특한 전망대다.
아래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그저 있을 뿐이다.
전망에서 내려오는 길 ... 오후 3시에 가까와 지면서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1시간 일찍 해가 진다는 사실이 불현듯 생각났다..
켄과 베리의 나무 ... 72년 닛산 자동차 광고로 유명해진 나무라서
일본인들은 꼭 한번씩 들른다는 곳이다.
기억도 못하는 오래된 스토리로도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그들의 상술은 우리 나라 지자체들도 배울 법한 일이다.
오늘 하루 같이 달려준 자동차 ... 도요타 파소(PASSO), 1000cc 소형차지만,
실내가 넓고, 여성들도 운전이 편안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눈오는 들판을 상상하며...
눈 내리면 더 아름다울 것 같은 들판에서 어느 겨울에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일본 북해도는 세계에서 21번째로 큰 섬이라는데 그렇게는 잘 와 닿지 않는다.
한반도의 85%의 크기라고 하면 좀더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누족이 살던 땅을 야마토 족(현 일본 주류민족)이 개척하여 밀어낸지 불과 200년,
일본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을 모아 놓을 교도소를 지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북해도의 자연은 동쪽의 삼림지대와 서쪽 구릉지대로 구분되는데
비에이와 후라노는 서쪽 구릉지대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을 겨울대로 아름다운 이 곳은
사시사철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최근 들어 제주도에 중국인들이 몰리면서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했던
협재와 남원조차도 이젠 외지인들에게 점령되어 버렸다.
힐링이 필요할때 갈 수 있는 곳을 찾아 더 외진 이 곳을 찾았지만,
이들에게 나는 한적한 땅을 시끄럽게 만드는 외국인일 뿐...
나의 힐링처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이 곳까지 찾아와서야 나는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