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세번째날은 고궁박물원 관람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오후에는 양명산으로 올라 온천리조트에서 하룻밤을 잘 것이다.
아침 일찍 조반을 먹고 짐을 모두 챙겨 고궁박물원으로 향했다.
오전에 쏟아져 들어오는 관광객들보다 먼저 티케팅을 하고
오디오 가이드를 챙겨 주요 문화재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대만의 고궁박물원은 그냥 대만 그 자체라고 평가를 받는다.
이 곳을 설명할 때 장제쓰와 연관된 근현대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가치를 평가하자면
고궁박물원은 명청대의 중국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세계적인 박물관이다.
국립 고궁박물원의 정원, 즈샨위엔(지선원, 知善園) ... 황후가 없는 황후의 정원이다.
고궁박물원으로 오르는 중앙 왼편에 이런 길도 있다.
매스컴을 통해 유명해진 취옥백채... 손바닥 만한 크기에 배추 위에 여치 다리가 보인다.
그 옆에 원래는 돌로 만든 돼지고기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출장 대여 중이다.
당의 미소... 당의 미인상 ... 당은 중국 역사 상 가장 국제적이었다.
당시의 미인상은 국제적인 기준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풍만한 몸매에 둥근 얼굴, 작은 입술과 오똑한 콧날, 가늘게 올라간 눈매..
그리고 긴 소매와 치렁치렁한 치마의 길이는 노동을 하지 않은
고귀한 여성의 신분을 말해준다.
당의 비너스라 할 만하다.
당삼채... 붉은색, 녹색 흰색이 어울어진 당의 도차기 인형
고교시절 교과서에서나 보던 당삼채를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당나라의 세계화를 반영되어 있고, 서역의 양식이 가미된 부장품이다.
화려한 귀족문화로 대표되는 당나라 문화를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상아투화운룡문투구(透花雲龍紋套球, 상아공)... 17겹으로 파서 깎은 세공술은 미스테리할 지경이다.
대만은 이런 기예에 가까운 공예품들을 대표 문화재로 소개하면서
오히려 중국문화의 풍성하고 웅장했던 문화를 보여줄 기회를 잃고 있어 안타까웠다.
점심시간이 되면서 아이들은 박물관 밴치에
늘어져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재미없는 역사와 공예품 관람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더 보고 싶었던, 그림들은 1층에 있었지만,
3층에서 시작된 관람은 2층을 넘어가지 못하고 접어야했다.
점심 식사 후,
양명산으로 향했다.
하루에 몇편 되지 않는 버스 편이 그나마 결편 되면서
거리에서 1시간 30분을 허비한 끝에 택시를 타기로 했다.
높은 고개마루를 세 번을 넘어 양명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더 험준하고 무서웠다.
미터기 대로 데려다 주기로 하고 탄 택시의 기사님은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이다.
우여곡절끝에 도착한... 양명산 티엔라이리조트
허접했던 놀이시설들... 다행이 유황 온천물이라 위로가 되었다.
오래된 테마파크라서 그런 지 관리가 부족하다.
리조트는 구름과 연무에 둘러싸여 음침하기까지 했다.
주변 산새는 험했고, 가까운 곳에 식당이나 편의점 따위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양명산 리조트에서 하루는 여행의 즐거움을 절반으로 꺾어버렸다.
영어도 통하지 않는 직원들의 일방적 응대.
이해할 수 없게 표시된 식당의 메뉴판.
낡고 후락한 객실과 편의시설들.
무엇보다 평일에 불 꺼진 객실이 많은 호탤에서
특급호텔의 정상요금을 고스라니 냈다는 사실이다.
혹시 누군가 이 곳에서의 숙박 의사를 묻는다면 단연코 말리고 싶다.
마지막 날 타이베이 메인터미널에서
체스판이 연상이 되는 터미널 바닥에 앉아
차 시간을 기다리는 시민들의 모습에는 자유로움이 있다.
대만의 아시아나 에바항공사 라운지 ... 새로 단장해서 깔끔하고, 서비스가 남다르다.
3박4일간의 대만 타이베이 여행 후 한동안 화가 나 있었다.
화가 난 이유도 잘 알지 못하고 그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가
시간이 지나 감정이 누그러지면서, 그날들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만여행은 마치 지방소도시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동양 문화권에 비슷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
크게 새로움을 기대한 바도 없었지만,
지나친 익숙한과 평범함에 질려버린 것이다.
또 동북부 여행 때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
부득이 택시투어를 해야한다는 말을 듣고
잘 하지도 않던 패키지 여행을 한 것이 실수였다.
하루 종일 시간에 끌려다니면서
지력과 체력이 모두 소진되었던 것이 불만이었고,
마지막으로, 지인에게 추천을 받아 야심 차게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묵었던 양명산 리조트의 형편없는 서비스와 후락함에 화가 나 있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보면...
결국 나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된 일종의 사고였다.
여행을 여행답게 하려면 무엇보다 정보력이 중요하다.
치밀한 정보력은 시간을 세이브해 컴팩트한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고,
식비와 교통요금 심지어 숙박비까지 줄여준다.
최근 들어 다녀온 여행들은 모두 준비없이 막연히 항공권을 끊어 떠났던
공통점이 있다.
정보없이, 준비없이 떠난 여행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원치 않는 일들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반성한다.
시간에 쫓겨 그저 연휴기간에는 여행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나와의 취향의 합일점을 찾도록 더 노력해야겠지만,
결국 혼자 떠나는 것만을 여행으로 정의하도록 개념을 바꾸어야할 시점이 된 것 같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