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서의 36시간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로의 이동수단은 철도와 항공이 있다.
유럽은 도심으로 바로 연결되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열차를 많이 이용한다. 더구나 기차여행이 여행을 더 여행답게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다.
나 역시 영화 제목같은 <부다페스트 행 야간열차>를 타고 7시간에 걸쳐 천천히 슬로바키아를 지나, 헝가리 땅으로 들어가면서 새벽을 맞이하는 유럽에서의 낭만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열차표를 오픈한지 3일만에 들어가서 보니 모든 좌석 매진... 여름철 성수기라서 일찍 표가 사라지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다른 원인이 있는 듯하다.
여행사들이 미리 구입을 해두고 이익을 붙여 팔고 있기때문이었다. 이렇게 여행사를 통해서 미리 구입해놓은 것을 다시 구입하면 항공권 가격보다도 비싸진다.
결국 항공편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지나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처럼 불혹으로 접어든 허리 아픈 여행자에겐 오히려 항공편이 낫다.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공항에서 비행기 길로 1시간 30분 ... 부다페스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 메리어트 계열에서 운영하는 아파트먼트로 방 두개 침실에 거실 욕실과 피팅룸, 작은 주방이 있는 곳이다. 출국을 앞두고 너무 늦게 숙소를 알아보는 바람에 4인 가족이 선택할 수 있는 숙소가 많지않아 조금 비싼 숙소를 잡아야했다.
포시즌스 호텔 ...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의 배경이 되었을 법한 건물이다. 헝가리는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그중 나에게 가장 깊이 꽂힌 영화는 <글루미썬데이>였다. 암울한 시대에 우중충한 도시 배경으로 우울한 음악 이야기...
도착한 부다페스트의 첫 이미지는 바로 이 모습이다. 잘 장돈된 도시에 오렌지빛으로 물든 왕궁과 다뉴브강(도나우강)에 비쳐 붉어진 물결 그리고, 야경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부다 왕궁이 보이는 강변에 낡은 트램이 지나고 있고...
수변 공원 중간 중간에는 이런 브론즈들이 있어 피사체가 되어주고
가까이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면, 더 가까이서 부다왕궁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다뉴브강은 파리의 센강이나 런던의 템즈강보다는 폭이 넓어, 부다 왕궁과 국회의사당의 야경을 제대로 보기 원한다면 한번쯤 유람선에 오르는 것이 좋다.
일명 <야경 깡패>로 통하는 부다페스트는 고품격 야경을 위해 전기를 마구 소비한다. 천연자원 빈국에서 유지 비용에 부담이 되지않을까 싶었으나, 다행이도 전기세의 60%를 유네스코에서 지원받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호텔을 나서 페스트 지역 관광에 나선다.
부다페스트 부다지역과 페스트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가 세체니 다리가 건설되면서 연결이 되어 오늘날과 같이 하나의 도시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그 중 부다왕궁 건너편 도심으로 탐방을 나선다.
1일 통합교통권을 끊으러 지하철역으로... 1일 교통권을 끊으면, 24시간 동안 시내 지하철과 트램, 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사회주의국가 시절 분위기가 물씬 나는 지하철 1호선 ... 최초의 지하철은 1863년 런던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두번째 이스탄불에 이어 세번째는 1896년 바로 부다페스트 1호선이다. (참고로 1896년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이 있던 해다.)
헝가리는 1989년이후 동구권에서 가장 먼저 서방에 개방을 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만큼 근대화와 개방의 열망이 강했던 나라다.
지하철 내부 역시 오래된 느낌 그대로다. 1호선을 제외한 2~3호선은 현대적인 지하철이고, 지금은 4호선이 새로 건설중이다.
중앙시장 ... 부다페스트 중앙시장은 청과와 아채 그리고 고기를 주로 파는 시장이다. 노천 시장이 아니라 커다란 공판장 같은 건물안에 있고 매우 깨끗하고, 현대적이다. 바닥에 물이 없는 이런 외국의 시장을 볼때마다, 낙후된 우리 재래시장이 생각이 난다.
과일가게 앞에서 ... 이들은 물건을 먼저 집어서 주인에게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면, 필요한 것을 말하고, 주인이 얼마나 원하는 지 물어가면서 담아 계산을 하고 나선다. 이 가게 주인은 동양계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마자르족이다.
정육점은 생고기와 숙성된 고기, 햄, 베이컨 같은 육가공품까지 모두 취급을 한다. 모든 정육은 부위별로 취급을 하는데, 소나 돼지의 콩팥이나 닭모가지, 근위부위도 따로 구입할 수 있다.
다양한 색깔의 파프리카를 취급하면서 야채가게가 과일가게만큼 형형색색을 이룬다.
헝가리인들이 말하는 파프리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피망과 비슷한 파프리카가 아니라 <고추>를 말한다, 헝가리 파프리카는 이곳 특산품이기도 한데, 고추가루로 만들어 여러 향신료와 함께 기념품으로 사가기도 한다.
다양한 식재료와 향신료, 건과일, 견과류들이 많아 헝가리인들은 외식은 잘 안하지만 항상 풍성하게 요리를 해서 먹는 민족이다. 그리고, 손님에게 음식을 권하면서도 더 많이 먹으라며 거드는 면에서 우리 민족과 비슷한 면이 있다.
사실 헝가리의 마자르족은 중앙아시아에서 도래한 민족으로 고대 신라인과 같은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실제 외모도 식성도 비슷하고, 풍속도 유사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평일 낮시간이라 시장은 한산했고, 관광객들을 향한 상인들의 호객행위도 흥정으로 목소리가 높아지는 일도 없다.
출출해질 때쯤 2층에 있는 식당가로 이동하여, 현지 식사를 주문해본다, 우리나라 육개장과 비슷한 굴라쉬와 인도의 난과 유사한 기름에 튀긴 빵, 그리고, 헝거리식 피자로 식사를 한다. 헝가리의 대표음식 굴라쉬는 더도 덜도 아닌 그냥 육개장이다.
에르제베트 다리(Erzebet hid)... 우리 발음으로 <엘리자베트 다리>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란츠 요제프의 아내 엘리자벳(시시) 황후를 기념해서 놓은 다리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소재가 된 바로 그 엘리자벳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그녀를 사랑했던 헝가리인들의 마음으로 건설한 다리이다. 엘리자벳 역시 헝가리를 사랑했고, 오스트리아로부터 헝가리의 독립을 지지했었다. 여행오기 전 한국에서 엘리자벳 뮤지컬을 가족이 같이 관람하고 온 탓에 깊은 이해도를 가지고 다리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2번 트램을 타고, 다시 바치거리로 이동 ... 에어컨도 나오지 않아 덥고 답답하지만, 트램에서 바라본 다뉴브의 멋진 경치에 불만조차 녹아내린다.
대낮에 본 부다왕궁은 이렇게 거대하고 완벽하다.
도착한 바치거리(Vaci utca) ... 마자르 족의 전통 춤사위가 한창이다. 바치거리는 우리 명동거리와 같은 곳이다.
오후 들어 해가 꺾이면서 거리에는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대형 백화점 앞의 관광객... 내가 사진 찍는 모습을 이 사람이 찍길래 나도 찍어봤다.
다시 트램을 타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한다. 국회의사당은 이 나라의 주요 보물들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오후 5시경, 벌써 입장객 제한으로 짤리고 결국 다시 돌아나와야 했다.
걸어서 성 이슈트반 대성당으로...
해가 늘어지면서 대성당의 벽을 노랗게 물들인다.
성당내부는 여느 대성당 못지않게 웅장하고 화려하다.
부다페스트는 전체 면적의 2/3이 온천지구다. 물이 풍족하고, 온천문화가 발달이 되어있어 여행자에게는 휴양도시로 통하기도 한다. 시내 한복판에 시민과 여행자를 위해 발을 담글 수 있는 넓은 못이 있다. 우리도 발을 담그고 생수 한 모금하면서 잠시 쉬어갔다.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거리 식당을 찾아 다닌다. 세계 3대 요리라는 이탈리아 요리를 하는 식당은 어딜가도 만날 수 있다. 노오란 건물 앞에 피아트 자동차가 매뉴판을 매고 있는 모습이 낭만적이다.
대성당이 보이는 거리에서 파스타와 필라프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부다페스트의 명물 장미 아이스크림 ... 딸기, 피스타치오, 카페오레, 그린티 등등 다양한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먹기전 사진으로 영원히 남기고자 한 컷... 여행 후 느끼는 행복감은 이런 사진 한 장에도 서려있다.
어부의 요새, 마차시 성당(Matyas Templom) ... 이 곳에서 프란츠 요세프 황제와 엘리자벳이 대관식을 치렀다. 이날 헝거리의 국민 음악가 리스트가 <헝가리 대관미사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모자이크지붕이 멋진 성당이다.
어부의 요새는 7개의 뾰족탑이 회랑으로 연결되어 네오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어부의 요새라는 이름은 19세기,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방어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어부의 요새를 찾는 이유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멋지게 볼 수 있는 주요 뷰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가운데 헝가리의 세종대왕, 마차시 고프비누스 기마상이 있다.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 본 페스트 지역의 국회의사당
이런데서 프로포즈해서 안넘어오면 둘 중 하나다. 여자가 이상하거나 아니면, 남자가 진짜 이상한거다.
부다왕궁으로 가기 위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15분이면 걸어올라갈 수 있는 곳이지만, 우린 <관광객>이니까 함 타고 올라가본다.
해질무렵 파래지는 하늘... 다뉴브강과 수직으로 부다왕궁에서 세체니 다리를 건너 멀리 성 이슈트반 대성당까지 길게 도열한 길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된다. 지금부터 야경을 즐기는 시간이다.
아이폰 5S로 담은 사진...다소 거칠다.
구글 포토스피어(현재 이름이 바뀌어 구글스트리트)로 본 부다 왕궁
↓ 클릭
부다왕궁...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이 톰크루즈 흉내를 내면서 뛰어다니던 곳이 이 곳이다.
아이폰5S 사진
해지고 찍은 첫 사진 ... 세체니 다리와 국회의사당, 그리고 성이슈트반 성당이 모두 보인다.
에르제페트 다리 쪽 야경 ... 오른쪽에 겔레르트 언덕이 보인다.
같은 포인트 두 개의 사진(5d mark3)
같은 포인트 두 개의 사진(아이폰 5S)
완전한 일몰 후 부다 왕궁 ... 부다 궁전은 현재 박물관과 도서관 등으로 쓰이고 있으며, 박물관과 도서관은 유료지만 궁전과 정원 관람은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왕궁 안쪽 세체니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길
세체니 도서관 입구에서 본 풍경
↓ 클릭
숙소로 들어가기전 에르제페트 다리 야경
다음날 아침
비엔나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켈레티 역으로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역 광장에는 노숙을 하는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야간열차를 타고 도착해서 아침을 기다리며 쉬고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항공편이 아닌 열차편으로 이곳에 왔다면, 나도 저들과 같이 광장 바닥에서 앉아 있었을까?
비엔나 행 열차가 출발하는 켈레티역 ...
남은 포린트화를 유로로 바꾸어 챙기고, 헝가리와 작별을 고하는 의식을 하고 있다. 도시와 작별을 고하는 의식은 바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내 눈과 마음에 담아놓는 작업이다.
부다페스트에서 비엔나로 가는 열차는 오스트리아 철도(OBB)다. 앞으로 3시간 후면, 또다른 국가, 다른 도시에 도착한다.
<에필로그>
유럽은 날씨가 온화하고 적절한 강우량에 작물이 잘 자라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서 수많은 민족들의 충돌과 융화를 통해 문명을 이어왔다.
특히 동유럽 지역은 동쪽으로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몽골)들과 맞닥뜨리고, 남으로는 이슬람세력과의 침략에 시련을 겪었던 곳이다.
헝가리는 근대에 들어서 오스트리아제국과 나치의 지배를 받았고, 1945년 이후 소련의 위성국가로 공산체제 하에서 자유를 박탈당했다.
1968년 이후 동구권에서 최초로 경제개혁을 단행했고, 1989년에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그들이 진정한 독립을 얻은 것은 수 백년만인 1989년부터다.
그 사이 수많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오면서도 문화적으로 융화되어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전통을 이어오며 마자르족으로서 자존감을 지켜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구 1000만명에 불과한 이 작은 나라에서 기초과학이 발달하여, 노벨장 수상자를 13명이나 배출할만큼 뛰어난 두뇌를 가졌다는 점이다.
헝가리인들은 자신들을 로마를 떨게 했던 5세기 아틸라(유럽 훈족의 왕)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훈족은 5세기 이후 1000년간의 공백이 있어 마자르족이 훈족의 후손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인다. 다만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한 민족이라는 것은 헝가리어의 어순이 우리와 같고, 유목민족의 풍습이 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코리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를 소개한 버라토시라는 민속학자가 헝가리 사람이었다. 그는 1900년대에 우리나라에 대해 잘못 알려진 소문을 바로 잡는 등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민족와의 관계는 약하게나마 이 정도로 정리되지만, 고대 신라인과 아틸라의 훈족, 마자르족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하는 인류학자가 있은 것으로 보아 혈연적, 문화적 유사성이 더 밝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럽의 절대절경이라 불리우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헝가리라는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갔었던 것이 못내 아쉽다.
야경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왔고, 사람들도 역시 친절했다.
그리고, 체코보다도 저렴한 물가 역시도 여행자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길게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여행지로서 체코 못지않은 매력이 있는 곳이지만, 대부분 하루면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빈약한 곳이라고 폄하를 해서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우리나라에서 직항이 없는 탓에 동유럽여행 시에 많이 제외되는 도시지만, 앞으로 더많은 우리 관광객이 찾으리라 생각한다.
부다페스트는 그 정도로 충분히 멋진 도시였다.
다시 여행은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