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일차 엑상프로방스로 ...
한국과 프랑스는 7시간 시차가 있다.
초저녁엔 한국에선 새벽이고, 아침에 한국에선 한낮이다.
덕분에 새벽 3-4시만 되면 잠이 깨버린다.
오늘도 이른 아침 5시경 기상해서 주섬주섬 체크이웃을 준비한다. 호텔에서 체크아웃 하는 날은 늘 분주하다. 빠뜨린 것은 없는 지 열었던 서랍, 냉장고를 반복적으로 열어보고, 그 새 불어난 살림 때문에 패킹에 애를 먹는다.
트램을 타고 어제 예약해 둔 버스 정류장으로 부리나케 이동한다. 시간도 많이 남았고 아는 길이지만, 조바심에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액상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도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대학이 밀집되어 있어 젋은이들이 많고, 연중 360일이 맑은 날이라 일조량도 풍부하고, 물이 풍부하며, 온천도 있다. 게다가 미술관과 박물관 수준도 높아, 남부의 파리라고 불리우는 도시다.
사실 남프랑스 여행을 계획했을때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엑상 프로방스였다.
나스에서 엑스까지 LER 20번 버스는 30.4유로다. 178Km 서울에서 청주가는 거리지만, 3시간 넘게 걸리는 완행이다. 덕분에 요금은 열차에 비해 많이 저렴하다.
버스 승객은 나를 포함해 5명이다. 평일 오전이라 현지인들은 없고 여행객들 몇몇만이 새벽 버스를 타고 있다.
사실 니스에서 엑스를 가는 길에 수많은 멋진 도시와 마을들이 있다. 최고의 피카소 미술관이 있는 해안도시 앙티브, 영화제로 유명한 칸, 향수제조의 메카 그라스 등등 ... 꼭 한번은 들러야할 곳들이지만,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패키지 여행자는 시간적으로 다 가보기는 불가능하다. 렌터카 여행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렌터카 여행은 다음에 기회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고르고 골라 정말 가고 싶었던 도시만 선별을 해서 동선을 짜야 했다.
3시간 20분 걸려 엑스에 도착....
버스 정류장 (gare routiere d’Arle)에서 숙소까지 걸어서 10여 분, 호텔에 짐을 맡기고 여행을 시작한다
구도심 동쪽 끝에 숙소를 잡았다.
엑상프로방스는 미라보(Mirabeau) 거리를 중심으로 위쪽 구도심과 아래 미술관, 서쪽 신도심으로 나눠진다.
여느 지방 도시처럼 걸어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구도심은 넓지 않다.
숙소에서 걸어서 성 소뵈르(Saint-Sauveur)성당에 도착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예배당 끝에 앉아 경건한 기도를 드렸다. 여행이 무사히 끝나길 ... 신교(기독교)와 구교(천주교)는 다르지만 결국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아닌가?
유럽여행 중 만나는 성당은 항상 어머니 같다. 대부분 교회당 문은 열려 있고, 요금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더위와 추위에 지친 여행객들에게 잠시 쉴 수 있는 의자를 제공해주고, 또한 골목에서 길을 잃었을 떄 높은 첨탑을 보면서 다시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이정표 역할도 한다. 작은 마을일수록 더욱 빛이 난다. 그 동네에서 가장 화려하고 갚진 것을 모아둔 곳도 대부분 성당이라서 관광객으로서 꼭 들러야하는 경우도 많다.
예배당에서 나와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폴 세잔( Paul Cezanne)의 아뜰리에(Atelier)로 향했다.
엑스의 도시 곳곳에 세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중 그가 말년에 칩거하면서 정물화에 몰두했던 작업실을 가보려고 한다.
예전에 한 화가의 작업실에 간 적이 있다. 대학 교수이면서 30년간 화가로서 살았고, 개인전만 20여 차례를 연 중견화가였는데, 그의 작업실 남루함에 많이 놀랐었다. 하지만 그림은 하나하나 주옥같이 아름다웠고, 화가는 앉을 자리 없이 난잡한 방에서 미안한 듯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몰입의 공간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세계일 뿐...
화가 폴 세잔도 그랬을 것이다. 피사체와 화구들 이외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다.
서양화에는 해골이 많이 등장한다. 대부분 죽음과 종말을 상징하며, 관람자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로 활용했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가는 구도심 길목마다 젊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늙은 여행객과 주민들이 많았던 니스와 사뭇 다르다. 어디가나 활기 찼고, 사람들은 행복해보인다. 대학 도시로서 면모가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액상프로방스는 프랑스 내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곳이다.
유럽의 카페 문화의 본질은 '멍때림'에 있다.
하루 중 해가 가장 중천에 있는 시간에 햇볕을 살짝 피해서 앉아,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듯하지만, 이런 마디가 있는 일상이 새로운 생각들을 창조해냈다.
그라네 미술관은 14세기부터 20세기 컬렉션을 상시 전시하고 있다: 프랑스, 플라드르, 네덜란드, 이탈리아 학교 작품과 렘브란트(Rembrandt), 루벤스(Rubens), 앵그르(Ingres), 다비드(David), 그라네(Granet), 세잔 학교(école de Cézanne), 세잔 관(la salle Cézanne)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2개의 컬렉션: "세잔(Cézanne)부터 자코메티(Giacometti)까지", 19점의 자코메티 작품, 레제(Léger), 몬드리안(Mondrian), 클레(Klee), 스탈(Staël), 피카소(Picasso), 탈 코트(Tal Coat)의 작품을 비롯해 20세기 아트를 한눈에 조명해 볼 수 있다.
그 중 관심있게 보았던, 몇몇 작품들을 올려본다.
알베르토 쟈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는 스위스 태생의 조각가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비쩍 마른 듯한 작품들이 주종이라서 누가 봐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그는 스위스 100프랑 지폐에 그려져 있을만큼 사랑받고 있지만, 아직 그의 작품만 전시하는 전용 미술관은 없고, 이 곳이 그나마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엑상 프로방스 일정은 단 하루다.
여유있게 돌아보려면 이틀은 족히 잡아야 하지만, 뒤에 계획된 일정이 다소 빡빡해서 엑스에서 머무를 시간이 부족해졌다. 나중에 지나서 생각해보니,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바로 엑상 프로방스에서 보낸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가장 지중해 도시 다운 날씨와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들이 좋았고, 동양인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상대적으로 눈길을 덜 탔던 것 같다.
그간에 참아 왔던 맥주를 이 날 한 캔 시원하게 들이키고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