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의 하루
피렌체(Firenze)... 플로렌스(Florence), 불어로는 플로랑스(Florance)로 불리운다.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지로 20만여명의 시민들과 연간 400만명의 관광객이 살아가는 거대(?) 관광도시다. 어원을 따져보면 <꽃>을 뜻하는데,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명명된 이후에 약 1200년간은 로마 변방의 소도시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름과 다르게 화훼업보다는 가죽공예 제품과 양모를 이용한 섬유산업이 발달이 되었고, 금융업으로 대표되는 메디치가의 지원으로 13~17세기 미술과 인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화려한 도시이다.
이탈리아가 통일되기 전, 피렌체는 베네치아나 밀라노, 피사 등등과 경쟁을 하던 유력 공국(共國)으로 '14~16세기의 뉴욕'으로 번성을 했던 흔적들을 아직도 찾아볼 수 있다.
7박9일간의 이탈리아 일정 중 피렌체에서의 일정은 단 하루 20시간 정도라서 도시와 교감하고, 그들의 정서를 깊이 느껴볼 새가 없었었고, 배낭여행객 마냥 몇 군데 둘러보는 식이 되고 말아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겉핥기로 나마 이 아름답고 유서깊은 도시에 발을 딛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다시 이 도시를 자세히 돌아보는 그때까지 아쉬움은 지속될 것 같다.
지금부터 피렌체에서의 짧은 여정을 시작해본다.
베네치아에서 아침 8시반 경에 출발한 열차는 11시가 되어서야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떨어졌다. 오면서 내내 제법 굵은 비가 열차 차창을 세차게 두들기던 탓에 단기 여행자로서 험난한 일정이 예상되었지만, 열차에서 내리는 순간 다행이도 비는 잦아들고 있었다.
시뇨리아 광장 근처에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여 직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가랑비였지만 무거운 트렁크를 끌면서 비를 맞고 온 탓에, 초가을임에도 온 몸에 한기를 느끼고 있었는데, 막 도착한 우리 일행에 친절하게 따뜻한 커피를 먼저 내어주었다. 트립어드바이저 별 5개가 거짓이 아니었다.
게스트하우스임에도 정갈하고 로맨틱한 객실이 마음에 든다.
예약을 하면서 결혼 15주년임을 밝혔더니, 웰컴 드링크와 함께, 작은 스파클링와인도 준비를 하고, 비록 조화이기는 해도 침대에 꽃잎도 뿌려 놓았다.
숙소를 나와 광장을 어슬렁거린다. 우피치 미술관 관람까지는 아직 1시간 30분이 남아있어 그간에 돌아볼 곳을 지도에서 찾아 표시해들고, 나선다.
산 조반니 예배당. 천국의 문...로렌초 기베르티의 청동문으로 불리우며, 24년간에 거쳐 제작되었으며, 아담과 이브부터 솔로몬까지의 구약성경의 내용들을 부조로 새겨놓았다. 불행하게도 세례당은 공사중이라 비계가 설치되어 있고, 문만 밖에서 볼 수 있었다. 진품은 다른 곳에 있고 이 문은 현재 모조품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정교하기 이를데 없다. 사진 찍는 사람들의 물결에 치어 겨우 비집고 들어가 10장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받았던 정도의 감동은 받지 못한 거 같다.
살짝 문을 열고 본 세례당의 모습은 다소 검소해보이는 외관과 달리 화려하기 이를데 없었다. 여기 성화들은 역시 창세기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피렌체의 상징이 되어버린 '두오모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 Fiore)'.
영화<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아오이와 준세이가 옥상에서 만나던 바로 그 성당이다. 내부에서 보면,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성당(성베드로 성단) 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비잔틴 양식의 돔구조로 기둥이 없어 크고 웅장하지만, 간소하게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화려한 돔천장 그림을 자랑한다.
성당 밖으로 나와 다시 두오모의 돔을 위에서 바라보기 위해 '조토의 종탑(Companile di Giotto)'으로 올라간다. 10유로의 요금을 내고 들어서서, 한 줄로 늘어선 줄을 따라 좁고 긴 400여개의 계단을 오른다, 전날 술마시고, 일요일 새벽에 청계산 올라가는 것 만큼이나 힘들었다. 참조가 되도록 숨차고 땀 범벅이 되어 주저 앉은 내 모습을 찍어두었다.
어렵사리 올라온 종탑에서 바라본 두오모의 지붕. 가랑비도 그치고 살짝 구름은 머금은 나즈막한 산 아래 동네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색 지붕의 행렬 속에 간간히 보이는 초록색 나무들... 그리고. 직경 43m나 되는 거대한 돔 지붕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종탑에 내려와 우피치미술관으로 가는 길에서. 이미 날씨가 바뀐지 오래다. 구름사이로 간간히 들어오는 햇살이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비추어준다.
비가 그친 후 거리에는 다시 사람들로 가득하다. 대부분 관광객들이다. 평일 낮에 거리에 상인들과 관광객이 대부분인 것은 어쩜 당연하다.
시뇨리아 광장... 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베키오 궁전, 메디치가문이 살던 저택이다. 과거 메디치가문의 사무실로 쓰이던 건물이었던 우피치와 연결이 되어 있다. (우피치 = 오피스 같은 말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며, 이 광장 한 곁에는 조각공원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나타내주는 수많은 조각품들이 세워져있다.
우피치미술관 앞의 시뇨리아 광장 조형물은 대부분 15~16세기 경에 만들어진 모조품들이다. 여기 <다비드>도 원작은 미켈란젤로이고, 원작은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에 소장되어 있으며, 메디치 가문은 모작을 만들어 이 곳 광장에 세워놓았다. 실제 크기와 같은 사이즈로 미켈란젤로가 원했던 바대로 지붕 없는 광장 앞에 있다. 여기서 지붕이 없는 광장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작품이 지붕이 있는 공간에 전시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 자신이 화가가 아닌 조각가이기때문에 회화와 달리 한 면에서만 감상을 하는 것이 아닌, 입체적인 감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광장처럼 넓은 공간에 전시되는 것이 옳다고 보았던 것이다.
페르세우스 청동상 ...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하여 페르세우스가 잡고 있는 머리는 메두사의 것이다. 이 작품역시 진품은 바티칸에 있고, 모조품을 제작한 것이다.
코지모 1세의 청동기마상...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가이드를 해주실 분과 미팅을 하기로 한 장소이다.
가운데 인상을 쓰고 있는 분이 우리를 우피치로 안내할 가이드 <최영인>님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가이드를 데리고 혹은 모시고 다녔지만, 그 많은 분들 중에서 가장 감명을 준 프리젠테이션을 한 분이다. 누군가 피렌체 여행을 계획한다면, 반드시 이 분에게 가이드를 받도록 강력 추천을 하고 싶다.
우피치미술관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한국에서 미리 웃돈까지 얹어 선납금을 내고, 예약을 했음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 밀려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어렵사리 우피치에 입성을 해서 3층으로 올라와 처음으로 본 것이 바로 이 문장이다. 가운데 5개의 동그라미가 있는 이 문장이 바로 우피치를 미술관으로 만든 메디치가문을 상징한다.
방에는 회화, 복도에는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벽 상단에는 당시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사들의 초상화가 도열되어 있다.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 우피치 미술관의 주인들의 방, 라트리부나(La Tribuna). 이 곳이 바로 우피치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가운데 비너스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전시된 그림의 주인공들이 바로 우피치의 주인들...메디치가 사람들이다.
복도 끝 창문에서 바라본 베키오다리, 베키오 궁전에서 우피치를 거쳐 회랑을 연결하여, 베키오 다리를 건너 피티궁전까지 연결을 하여, 비를 맞지 않고도 걸어서 편안히 출퇴근이 가능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도망갈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놓았다.
우피치의 모나리자...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나무판에 그려진 템페라화라서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색이 많이 바랬다. 하지만, 기독교 중심의 사고를 하고 성서 이야기만 그려내던 화가들이, 인간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비너스는 알려진 바와 같이 로마 신화에서 <미>를 상징하는 여신이다. 서슬퍼런 중세시대에 우상 숭배로 보일 수도 있었는데, 이런 작품을 그려냈다는 것은 이미 화가들이 단순 기능공을 넘어서서 자신의 철학을 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화가가 예술가로 대접받을 수 있게된 것이다.
보티첼리의 <봄 La Primavera>... 보티첼리의 가장 전성기때 작품으로 신혼방에 걸렸던 그림이라고 한다. 제목 그대로 봄의 화사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미켈란젤로의 성가족(Sacra Famiglia). 아기 예수와 요셉 그리고, 마리아를 그린 그림이다. 유화처럼 보이지만, 템페라화다. 이것은 복원 과정을 거치면서 색이 많이 밝아졌는데, 이를 바탕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가 복원이 되어 지금의 천지창조가 원색 찬란한 색상을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둥근 화판을 사용한 것은 당시 귀족들의 가정에 기념이 될만한 일을 남겨두고자 할때 이런 원형 그림을 많이 사용했기때문이고, 실제 피렌체의 또하나의 유력가문인 스트로치 가의 딸을 출산한 것을 기념해서 제작되었다. 프레임에 있는 돌출형 조각도 역시 미켈란젤로의 디자인이다. 그림은 미켈란제로 특유의 조형미가 살아 있고 안정된 삼각형구도를 갖추고 있다. 성화임에도 성화 같지않는 그림이다. 이런 중요한 그림에는 꼭 앞에 방탄 유리로 보호를 해놓았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마네의 올랭피아, 고야의 마야부인 등등 이런 자세로 누워있는 나신 그림은 이 그림이 원조다. 발치에 있는 강아지는 정절의 상징으로 이 여인이 정결한 여성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너스에 열광하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카라바조 그림 <바쿠스>. 카라바조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이다. 성화가 주종을 이루던 시대에 성화를 그리면서도 현실에 있는 모델을 바탕으로 그려냈고, 정물화의 효시가 되었던 작품을 그린 화가다. 또한 르네상스 미술에서 바로크 미술로 이어주는 진화학적으로 비유를 해서 <발 달린 물고기>쯤 되는 거장이다. 어두운 배경에 빛의 방향을 가늠케해주는 일관된 콘트라스트는 그림의 격죠를 높여준다.
우피치를 나와 베키오 다리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시내를 거쳐...
베키오다리 초입에서 ... 베키오 다리 위에는 시계보석상이 즐비하다. 한국의 종로를 옮겨놓은 듯한 귀금속 상가는 과거 세공술이 발달했던 토스카나 지방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시계는 대부분 스위스 브랜드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베키오 다리에서 바라보는 아르노강... 중세도시의 고즈넉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길을 걷다가 발견한 누군가의 장난이 섞인 작품을 보았다. 평범한 장난이지만, 진중해보이는 도시에 약간의 위트를 준다.
날이 저물어간다. 하늘빛이 잦아들면서 쇼윈도에서 뿜어져나오는 광선들과 가로등으로 거리는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오후 일정 후 숙소에서 직원에게 소개받은 식당에 들어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픈한 지 한달 된 신삥이었다. 나름 현지인들에게 Hot한 레스토랑이라고 한다.
고풍스런 건물안에 현대적인 인테리어... 청담동에 와있는 줄 착각을 할 정도로 느낌이 유사하다.
피렌체에 오면 스테이크를 먹어보라고 했다. 가죽제품이 많이 생산되는 토스카나 지방에서 고기 요리가 발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국적인 고급요리를 맛보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의 하나다. 스테이크 1Kg을 주문하니 고기를 굽기 전에 도마 채로 가지고와 상태를 보여준다. 와인 콜키지 하는 것과 같다. 지방이 적은 티본 스테이크... 상추와 가지런히 올려져있다.
핏물이 가실 정도의 미디움으로 주문을 한 스테이크는 웰던에 가까운 자세로 나왔다. 같이 곁들여나온 구운 아채는 추가 주문이다. 피렌체의 스테이크는 소스는 따로 없이 미리 해놓은 소금간에 의지해서 먹어야한다. 피클도 없이 와인에 고기를 먹으려니, 곤욕스럽기는 하지만, 나름 나쁘지않았다.
1시간에 걸친 식사 후에 다시 시뇨리아 광장으로 나왔다. 주변에 자신의 CD를 파는 버스커들이 자리를 잡고, 기타의 향연을 펼치고 있고, 여행자들은 삼삼오오 주변에 앉아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한다.
보름이다. 구름사이로 어스릇하게 보이는 달이 흑백 대리석으로 지어진 두오모성당과 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피렌체 일정은 하루로 잡아 단지 그냥 가기 아쉬워 지나가는 정도로 잡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실수한 부분인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 도시는 여행자에게 포근하고, 신비감을 주는 곳이다.
메디치가에 의해 400년간 일구어진 예술과 인문학의 흔적은 도시 곳곳에 스며있어,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다채로왔다.
가보지 못한 미켈란젤로의 언덕에서의 도시 풍경과 야경은 어땠을지 아쉬웠고, 우피치 미술관의 환상적인 콜렉션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혹시 다음에 이탈리아에 다시 오고 싶은 곳이 있다면, 앞으로도 단연 <피렌체>가 될 것 같다.
<에필로그>
나는 가이드와 함께 하는 여행은 사실 좋아하지않았다. 일정도 시간도 모두 남에게 맡겨야하고, 기계적으로 돌면서 보아야하는 식의 가이드는 여행의 맛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앞서 우피치 미술관에서 가이드를 맡은 최영인 님은 좀 달랐다.
우피치에 있는 400년간 이어진 미술품들 속에서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까지의 미술사를 요약해주었고, 미술품들이 깊이 의미하는 바를 끄집어내어 여행자에게 숙연한 감동을 선사했다.
가이드업체인 <피렌체투어>라는 곳에 속해 있고, 여기서 가공된 잘 다듬어진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단순히 암기 후 뱉어내는 언어로는 감정을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우피치 소장품에 대한 애정과, 미술에 대한 그녀의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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